저러다간 오래 못 가지
1
꽃이 피었다지만 철모르는 꽃이지
아직 입춘도 오지 않았는데
한 엿새 봄 날씨 같다고
하룻강아지 범 무서운 줄 모르고
지조 없는 개나리가
화냥년 가랭이 벌려 주듯
아무 데서나 피어나면
처녀들 가슴만 설레다가 상하지
반딧불을 봐야 별을 대적한다지만
달 밝은 밤이 흐린 날만 못하지
영하로 떨어지기만 해봐
언제 피었냐는 듯 힘 못 쓰고
쏙 들어가고 말지
저러다간 오래 못 가지
2
메뚜기도 오뉴월이 한철이라고
신선놀음에 도끼자루 썩는 줄 모르지
만나면 사랑한다 해놓고
오늘은 이 여자 내일은 저 여자
여자가 한둘이 아니여
내가 알고 있는 여자만도 다섯이여
양다리 걸치는 것도 한둘이지
비용이야 남자가 잘 났은께
여자 측에서 낸다고 치고
시간을 어떻게 쪼개서 만나는지 모르겠어
저러다가 전성기 다 놓치고
이상한 여자 델고 살드라고
여자가 눈치채면 기분 좋겠어
이 여자 저 여자 재고 있는 데
알면 기분 잡쳐서 단념하지
나 같아도 미련 없이 떠나지
저러다간 오래 못 가지
3
죽자 사자 쫓아다닌다고
일방적으로 혼자 좋아하면 쓰남
맴이야 자유니께 뭐라고는 못하는디
열 번 찍어 안 넘어가는 나무 없다지만
상대가 꼴두 보기 싫다는데
수백 번을 찍은들
닭 쫓던 개 지붕 쳐다보는 거지
소용 있겠어 제풀에 꺾이겠지
염불을 해도 소귀에 경읽기인디
죽쒀서 남 좋은 일 시키는 것도 아니고
당사자가 멀리하는데
약장수 뒷북치다 말 겄지
염려 붙들어 매놓소
그 집 사위는 안 될 것잉께
구술도 꿰어야 보배라는데
언제까지 그리 쫓아 다니건남
저러다간 오래 못 가지
4
열길 물 속 깊은 건 알아도
사람 마음속은 모르는 것이여
믿는 도끼에 발등 찍힌다 하지 안남
며느리를 철썩 같이 믿는 데
웃음 속에 칼을 들이댄다고
비수를 품고 있네 그려
언젠가는 들통나는 법이여
후회하는 날이 올 것이구먼
시부모를 속이고 언제까지 가건남
피눈물도 없는 며느리구먼
죽은 자식만 불쌍하지
시부모나 살게 놔두지 돈을 빼돌려
저렇게 하면 죄받는 법인디
그 돈은 어디다 썼는지야
그것이야 모르지 서방을 얻는데 썼는지
서방질을 하는데 썼는지
본인이 잘 알 것이고
저러다간 오래 못 가지
5
도와주는 것도 어느 정도이지
밑 빠진 독에 물 붓기지
있을 때 아껴 쓰고
필요할 때 손을 내밀어야지
눈치코치 없이 아무 때나
손을 내밀면 쓰것남
말 한마디에 천냥 빚을 갚는다는디
서방한테 말하면 안도와 주건남
소 잃고 외양간 뜯어 내지 않건남
청천하늘에 날벼락이 떨어질 것이고만
같이 만들어 낸 딸도 아니고
데리고 온 딸자식인데
딸년이 손내민다고 서방 몰래
몇 번을 빚 얻어 주면 같이 망하는 것이여
우선 달다고 곶감 빼먹듯
힘 안 들이고 살림하는 것이 온전하건남
저러다간 오래 못 가지
6
바람이 불어야 배가 간다고
아니 땐 굴뚝에 연기나건남
외간 남자하고 여관엘 들어가는 것을 봤대
남편이 고생해서 돈 벌어다 주면
애들하고 살림이나 오순도순 할 일이지
남편이 출근하기 무섭게 정장을 차려입고
카바레에 나간다잖아
칼로 물 베기라지만 부부는 남이랑께
그런 곳에 들락거리는데
남자들이 가만히 있겠어
밑져 봤자 본전인께 말 한마디 던져 보고
반응이 있으면 춤추자 겄지
그러다 술 먹자 커피 먹자
자연스레 만나는 거지 나도
누가 술 사 준다면 갈 맴이 있는디
우선 꽁자니께
남편이 눈치채고 미행한다는 소문이여
붙잡히면 끝장이 나겄지
갈라지던가 집에 처백혀 살던가
양단간에 결정이 나는거 아니여
저러다간 오래 못 가지
7
안 되면 뒤로 넘어져도 코가 깨진다고
하느님도 무심하시지
저런 인간을 그냥 놔두니
세상에 저런 일이 있어 세상 말세지
제 어미가 행상해서 근근히 목구멍에
풀칠하고 사는데 돈은 벌어다는 못 줄망정
홀딱 빼앗아 가 버려 죄받아 죽지
동네에 후레아들 하나씩은 있다더니만
한 푼 모디겨 놓으면 어떻게 알고
귀신같이 뺏는 거야, 안 주면 욕하고
때리려고 하니 안 주고 못 배기지
까마귀만도 못한 개망나니지
자기가 기른 개에 발꿈치 물린다더니
제 어미 피눈물 나게 해놓고
죄받지 천벌을 받지 천벌을
무슨 벼락이 떨어져도 떨어질 것이구먼
저러다간 오래 못 가지.
[월간 문학21 발표 20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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