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의 방

톡톡 탁탁/박 가월

egg016 2009. 2. 26. 22:16

 

 

 

톡톡 탁탁

 

양반집 가문의 큰할아버지는

장날에 오랜만에 만난 친구와

술집 청주댁에서 회포를 나눴다

그 소식을 접한 큰할머니는

장에 가면 청주댁에 들러

한잔 잡숫고 오는 게 못마땅한 터에

양반 체모에 식솔들 앞에서

싸울 수도 없어 벼르고 벼르다

겸상에서 바가지를 긁는데

술집도 많은데 하필이면

괴상한 소문이 도는 청주댁이냐고

감정을 토닥토닥 토해내며

조목조목 열거해 따지고 드니

황망한 큰할아버지는

허허, 헛기침으로 일관하다

밥상을 슬그머니 물리고

사랑채로 건너간다

화가 안 풀린 큰할머니는

밤에 은밀히 둘만 사용하던 암호로

건너오라는 신호를 하는데

담뱃대로 화롯가를 톡톡 치면

큰할아버지는 불편한 심기로

문지방을 탁탁 치며

담연을 카랑카랑 끌어 올리셨다

 

 

박 가월

 

*풀숲에 작은 들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