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에서

삶이란 되풀이 되는 것이 아닐까

egg016 2008. 11. 17. 12:22

 

 

 

 

 집안에 큰딸로 태어나 초등까지는 온갖 기대를 한몸에 받고 자랐다.

어릴 때부터 읽기를 즐겨해 손에 들어온 책은 밤을 세워서라도 다 읽을 때까지 놓지 않았고,

그 덕분인지 공부도 잘했고 학년이 올라갈수록 전교 일등은 도맡아 했다.

뺑뺑이를 돌려 중학교를 가지 않았다면 아마도 내가 가고 싶은 곳으로 갔었겠지만,

6학년때 바뀐 정책때문에 신축학교인 도심변두리의 중학교를 배정 받았다.

아! 지금 하려는 이야기는 이게 아닌데 항상 옆길로 새는 버릇은 어찌 고칠까...

밑으로 동생이 셋이나 있는 나는 중학교에 들어가면서 아버지의 갑작스러운 사업부도로

집안살림과 동생들 뒷바라지에 항상 바빴고...

그때 힘들었던 기억에 결혼을 하고도 아들하나로 만족하며 살아왔다. 

형제가 많은 집의 윗 형들은 항상 동생들을 보살펴야하는 책임감이 따른다.

난 그것이 부담이 되고 항상 힘이 들었었다.

엄마는 형편이 피면 대학에 가야한다고 인문계를 가라하셨고,

그러나 결국은 포기하고 고3때 취직반에 들어가 타자를 배우고 사회로 뛰어들었다.

내가 아들이었다면 어떻게든 대학을 보내주셨겠지, 사실 남동생은 대학에 갔으니까...

그래서 계집애로 태어난 것에 약이 오른적이 한 두번이 아니다.

그러나 그 시절 힘들었던 기억 때문에 내 자식을 외롭게 만들었지 않나 싶어 지금 아주 많이 미안하다.

알콩달콩 형제애가 주는 분위기를 느껴보지 못했던 것에도 항상 미안하다.

집과 직장이 멀어 독립한 아들은 나름 잘해내고 있어 대견하기도 하지만 마음 한 구석은 항상 짠하다.

이제 반려자를 만나 행복하게 살아가는 모습을 보는 것 이외에 다른 바램은 없다.

지금의 엄마들은 손자들을 봐주지 않겠다고 선언을 한다지만 난 그럴 마음이 없다.

내자식이 나중에 외롭지 않으려면 셋정도는 낳아도 좋겠다.

며느리가 반대하면 어쩔 수 없는 일이겠지만,

그러나 낳겠다고 한다면 어느정도까지는 내가 키워줄 것이다.

내가 저지른 어이없는 실수를 만회할 수 있다면 기꺼이 그렇게 할 것이다.

아들아 미안하다...그리고 기다린다...네가 꾸리는 가정에서 행복할 수 있는 그날을...

이래서 삶은 또 되풀이 되는 것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