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십여년 전 제주에 내려가 살 때,
회사에서 마련해준 오피스텔을 마다하고 굳이 시골로 들어가 살고 싶었다.
지금 생각하면 참 무모한 행동이었지만
앞으로 우리가 귀촌을 하는데 실패하지 않기 위한 예행연습이었다는 생각도 든다.
시골이라 해도 자동차로 십분거리, 회사분의 소개를 받고 찾아간
돌로 지은 옛날 집 마당에는 감귤나무와 잔디가 곱게 깔려 있었고
사람이 살지 않은 집에는 거미줄과 도마뱀이 기어다니고
아들은 얼굴을 찌푸렸지만 난 마음이 편해짐을 느꼈고
한지를 바른 방에 들어서니 정말 안락함을 느꼈다.
아들에게 미안했지만 오히려 지금은 즐거운 추억을 가지게 되어 감사하단다.
요즘은 많이 바뀌었겠지만 그때만 해도 제주 고유의 풍습이 그대로 이어지는 삶을 보면서
특히 몸과 마음가짐에 신경을 썼기에 이웃과 무난히 지내지 않았을까 자부도 해본다.
한해 농사를 마무리 짓는 한가한 겨울이 되면
집집마다 미루어 놓은 결혼식을 올리기에 며칠씩 잔치가 벌어지곤 했다.
동네 아낙들은 모두 모여 따로 마련된 창고에서 음식을 만들고
온 동네가 잔치분위기로 들썩 거렸다.
일을 도와 주면서 조금 과하다 싶은 생각이 없지 않았으나
사람사는 냄새를 듬뿍 맡을 수 있는 풍경이었다.
제주 고유 음식중에 '몸국'이라는 것이 있는데
돼지 살코기와 뼈 부산물과 함께 모자반(제주에서는 '몸'이라고 함)을
넣고 푹 끓여 낸 것인데 얼마나 맛있었는지...
덕분에 잔치집에서 일을 도와 주는 것이 즐거운 일이었다.
이제 시골로 들어가 살 계획을 꾸리는 지금
이웃들과 어떻게 살아야 되는지 잘 알고 있어 걱정은 안되지만,
예를 들어 문을 꼭꼭 잠궈 어르신들께 흉을 잡힌다든지 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ㅎㅎ
그 일로 나중에 부녀회장한테 얼마나 흉을 잡혔는지 지금 생각해도 얼굴이 붉어진다.
지난 여행에 땅을 보러 다니면서
삶의 터전을 옮긴다는 것이 착찹하기는 했지만
어디든 정 붙이고 살면 되겠지 하는 생각을 해본다.
자연으로 돌아가는 삶에 대한 고마운 댓가를 치루어야 한다면
마땅히 치룰 것이다.
일년이 될지 이년이 될지 더 미루어 져야 될지
자리잡고 사는 그 날을 눈앞에 그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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