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가 들어가며 챙겨야 할 것들에 대해서...
안락한 노후를 위한 물질적 풍요도 필요하겠지만 편한 사람과 함께 가는 것이라는 생각이 앞선다.
남편과 처음 만났을 때 그다지 말이 없었음에도 뿜어지는 마음의 배려는 늘 나를 감싸 안아 주었다.
어려운 사춘기 시절을 보내면서 성숙이 뭔지 난 너무 커버렸고,
또래의 친구들하고는 도대체 이성의 감정이 일어나지 않아 지독한 짝사랑에도 흔들리지 않던 내가.
앞자리 숫자가 절대로 같을 수 없는 남자에게 마음을 빼앗기고 말았으니,
말없이 몇시간을 같이 있어도 지루한 줄 몰랐고 마음이 통했고 그냥 편했다.
막내로 자란 남편은 개구장이였으며 집안의 귀염둥이였고 맏딸로 자란 나는 무지 어른스러웠고, 둘의 궁합은 안봐도 비디오...
나이가 주는 간격이 전혀 없었으며 오히려 남편은 더 어린애 같았고 지금도 변함이 없다.
도대체 걱정이 없는 사람이다...어머니하고 어쩌면 그렇게 딴판인지 돌아가신 아버님을 쏙 빼닮았다.
젊은날에 각방을 쓰기 시작한 아버님은...
퇴직까지 평생을 은행에 계시면서 남들이 보기에는 대단히 성공한 것 같이 보였지만,
기가 센 어머님에게 늘 지고 사셨고, 어쩌면 그리 행복하지 않으셨던 것 같다.
사랑방에서 담배와 소주를 벗삼으며 시간을 보내셨고,
골목길에서 아이들이 떠들고 놀아도 시끄럽다 소리 한번 안하시고
빙그레 웃으시며 창문을 살며시 닫는 분이셨다...
우리가 결혼하고 몇년후 치매로 고생하시다 돌아가셨지만,
아버지의 마음고생을 떠 올리며 눈가가 붉어지는 남편의 모습을 볼때면 내마음도 아프다.
아버님 산소에 갔을 때 "너무 오래 혼자 계셔서 외로우시겠다" 했더니,
이 남자 하는 말...."함께 사시는 동안 힘드셨으니 홀로 계시는 것도 편하실거야!"...윽...
슬픈 드라마를 보면서 눈물을 흘리는 사람...흑흑 나도 슬퍼...예민한 감성이 좋다.
우리나라 최고 대학을 나오신 아주버님은
어머니 성격을 그대로 이어받아 자존심이 강하고 누구에게도 마음을 드러내지 않는 분이다.
어머님하고 얼마나 똑같은지 형님은 지금 남편 시집살이 중이다.
그러니 지금와서 시집살이 지독하게 시킨 어머니를 또 모시고 싶을까...아이고 내 팔자!!!
형제가 달라도 이렇게 다른지,
대학 다닐 때 형보다 한단계 아래 대학을 나온 남편은 집안에서 기죽어 지냈단다. 그러나 거기까지...
나를 만나면서 물만난 고기였다. 난 이사람의 기를 항상 팍팍 살려 주었고 이래저래 지금까지도 그런 것 같다.
남편을 만난 것에 한번의 후회도 없었다면 거짓말이겠지만 같이가는 시간이 편하다. 그저 건강하게 오래 갔으면 좋겠다.
요즈음 형님은 상차리기가 지겹다고 하신다.
결혼하고 지금까지 외식한 것이 손가락 숫자보다 작다 하시니 말 다 했지.
퇴직한 주위에 알고 지내는 분들...아침에는 죽먹고 점심은 외식하고 저녁은 간단하게...무지 부러워 하신다.
갈 때 다 가져갈 것도 아닌데 편한 꼴을 못본다고 푸념이시다. 내가 생각해도 너무 하신 것 같다.
그 연세에 여행다니면서 노년을 즐겁게 사시는 분들이 얼마나 많은데...불쌍한 울형님...
어쨋든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사는거 별거 아니라는 것이다.
부귀영화를 꿈꾸고 또 그렇게 산다해도 마음이 편치 않으면 다 소용없는 일....
같이 있으면 마음이 편한 사람과 삶을 나눌 수 있다면 그것처럼 복받은 일이 또 있을까?
작은 것에서도 감동받고 고마워하고, 그러니까 지금 나는 행복하단 말이지?...호호
나중에 아주 나중에 정말 행복했었다고 말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아주 작은 행복이지만 여러분께 나누어 드립니다.
언제나 행복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