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의 방

행복의 언덕/박가월

egg016 2008. 9. 27. 06:30

 

 

 

 행복의 언덕

 

작은 언덕 너머에 고향 집이 있었습니다

철따라 꽃이 피고 소쩍새 수리부엉이 울었습니다

할아버지에 할아버지가 넘나들고

할머니가 넘고 아버지가 넘나들던 곳

어머니가 넘고 자식들이 넘나들었습니다

늦게 귀가하는 날은 어머니가 언덕에 나와 아래를 내려다보며

우리를 기다렸습니다

 

순이 아니냐?

예, 엄니!

………………………………………

왜 이리 늦었냐. 빨리 가자 배고프지!

 

가방을 받아 쥐곤 손을 잡고 동무가 되어주시던 어머니!

풀냄새 그윽한 궂은 날의 함초롬한 언덕은

어머니의 목소리만 들려와도 올라가는 길은 포근했습니다

달 밝은 언덕에 어머니의 모습은 아름답지 않아도 행복했습니다

소쩍새 우는 언덕을 어머니와 말동무되어 지나가는 길은

풀벌레도 숨죽이고 엿들었습니다

그네들을 멀리하고 떠나온 언덕

우리 아이들에게 무언으로 사랑을 가르쳐 주고 싶은 땅입니다.

 

[격월간 현대인 발표 200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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